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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이야기 끊임없는 찾기의 달인

by 정보 하우스 2022.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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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과 입양

  스티브 잡스는 1955년 2월 24일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출생하였고 친부모 가정에서 양육된 것이 아닌 폴 잡스 부부에게 입양이 되었습니다. 가정이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입양을 해야 했고 처음에는 변호사 부부 가정에 입양이 될 예정이었지만 딸을 원했던 가정이라 무산되었던 경험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된 일이 더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0년간 불임이었던 클라라 잡스, 폴 잡스 부부의 가정에 입양된 이후 이 부부는 스티브 잡스에게 애정을 바탕으로 관심과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스티브 잡스가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이미 양아버지의 영향으로 10살 무렵부터 기계 원리를 깨달은 상태였는데 이무렵 마운틴 뷰 즉 1970년부터 1980년대 전자 컴퓨터 산업 분야 집중이 된 실리콘벨리의 출발점이 된 곳으로 이사를 하면서  스티브 잡스의 운명은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곳에서 전자공학도인 스티브 워즈니악을 만나 친구가 되었고 세계가 아는 애플을 창업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스티브 잡스는 어딘가 모르게 불안한 면을 보였는데 이 부분이 어떤 면에서는 장점으로 작용하고 어떤 면에서는 단점으로 작용하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다행히 스티브 잡스의 양부모는 이를 장점으로 개선하기 위해서 스티브 잡스가 하고 싶은 모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던 덕에 이렇게 큰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창 시절

스티브 잡스는 우수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학창 시절은 낭비가 될 정도였습니다. 흥미와 만족을 전혀 못 느낀 스티브 잡스는 결국엔 아버지께 더 이상 클린튼 던 중학교는 다니지 않겠다 하였고 쿠퍼티노 중학교로 전학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티브 잡스는 전자장치 분해와 조립에 관심이 쏠려있었습니다. 스티브는 워즈와 어울리며 자신의 부족한 지식을 깨달았고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전자공학 강좌를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와이어 헤드라 불리는 컴퓨터 광이라는 의미를 가진 실리콘 벨리 고등학생들이 전자공학 클럽 회원을 일컫는 별명도 늘 따라다녔으나 전자기기에 탁월한 집착을 보였던 워즈와는 달리 스티브는 고2부터 전자분야에서는 흥미를 잃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전자기기에는 관심이 많았습니다. 스티브는 어릴 때 아무리 복잡한 기기라도 사람이 만든 것임을 일찍 깨달았기에 자신감이 생겼고 자신의 미래 개척과 돈을 버는데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항상 자신의 자아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늘 찾고 탐구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동양사상에도 심취해보고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모든 행동은 다 해보는 성향으로 인도 여행 이후 회사 취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하지 못했던 스티브 잡스는 여러 시도 끝에 자기만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와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성취감을 가지고 짜릿함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1976년 4월 1일 만우절에 스티브의 끈질긴 설득으로 워즈와 함께 창업을 하였고 사과농장을 우연히 다녀온 이후 영감을 얻어 스티브가 회사 이름을 애플로 정했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명언

  좋아하면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찾아다니고 조금이라도 관심이 끌리면 무엇이든 바로 시도를 했습니다. 즉흥적인 면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지만 오히려 이 계기를 자신은 매우 쓴 약이었지만 필요했고 이로 인해 내가 나을 수 있고 성장을 할 수 있었다고 사람들에게 깊은 메시지를 전해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모든 과정에서 실패이든 성공이든 이것을 계기로 숱한 시련 가운데서도 묵묵히 견뎌냄으로 인해 강하게 단련을 받고 또 이겨내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20년 만에 다시 돌아오게 된 애플에서 기업의 문화에 생명을 불어넣는 CEO 중 한 명으로 각인되었고 절대로 돈 때문에 움직이지 않았으며 보람을 느끼는 일은 꾸준히 추구하며 나아갔습니다. 애플 기기가 아름다운 이유도 그의 철학은 기계가 예술작품 못지않게 아름다워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남긴 말로 글을 맺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마음과 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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